올해 3월, 미디어 스타트업 슬로우뉴스가 이재명 정부 공약 이행 현황을 전수 조사해 발표했다. 결과는 92%. 여권은 즉각 "역대 정부 최고 수준"이라고 환영했고, 대통령실도 이를 공식 보도자료에 인용했다. 이 숫자는 그렇게 빠르게 유통됐다.

그런데 이 숫자는 정확히 무엇을 세었을까.

슬로우뉴스 조사에서 '이행 완료'와 '이행 중'은 같은 범주로 묶였다. 법안이 발의됐거나 예산이 편성된 단계도 '이행 중'으로 분류됐다. 공약을 세분화해 항목 수를 늘리면 이행률 자체는 올라가기 마련이다. 국민의힘 원내대표실 관계자는 "공약을 잘게 쪼개면 100%도 가능하다"고 했다. 슬로우뉴스는 이에 대해 "조사 기준을 공개했고, 동일 기준을 전 정부에도 적용해 비교했다"고 반박했다. 논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 빠르긴 빠르다

속도만큼은 이견이 없다. AI기본법은 올해 1월 시행됐고, 정부는 10조 원 규모의 AI 예산을 편성해 GPU 확보와 데이터센터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블룸버그는 한국 증시에 외국인 자금이 유입되고 있다고 보도했고, 골드만삭스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가능성을 언급했다.

임기 첫해에 이 정도 법제화 속도를 낸 정부는 드물다. 이건 사실이다.

▲ 빠른 게 전부인가

AI기본법을 둘러싼 논쟁은 조용히 계속되고 있다. 시민단체 오픈넷은 법 시행 직후 "개인정보 보호 조항이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알고리즘 규제 근거가 없다"는 의견서를 냈다. GPU 확보 예산이 어떤 기업에, 어떤 기준으로 집행될지에 대해서도 정보공개 요청이 잇따랐지만 상당수는 비공개 처리됐다.

한성대 경제학과 김상봉 교수는 "법을 만든 것과 그 법이 효과를 내는 건 다른 이야기"라고 말했다. "지금 평가할 수 있는 건 투입이지, 결과가 아니다."

민생 지표는 복잡하다. 물가 상승률은 올해 1분기 평균 2.8%로 전년 동기 대비 소폭 낮아졌지만, 식료품과 에너지 부문은 여전히 체감 물가와 격차가 있다는 통계청 발표가 뒤따랐다. 청년 실업률은 6.3%로 OECD 평균을 밑돌지만 '비경제활동인구' 중 취업 포기자 수는 늘었다.

▲ 숫자는 말하고, 숫자는 감춘다

92%라는 수치가 거짓이라는 증거는 없다. 동시에 이 숫자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 보기도 어렵다. 정책이 법이 되는 데 걸리는 시간과, 그 법이 현실에서 작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다르다. 전자를 세는 건 비교적 쉽다. 후자는 훨씬 오래 걸린다.

이재명 정부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것, 그 움직임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 지금 말할 수 있는 건 그 정도다.